정용이..이 자식..술먹고..서울 한번 안 온놈이..표준말 쓴다고..

느끼하게 굴던게..엊그제 같은데...

어른이 되었다니..

평생 듣도보도 못한 단어의 조합으로 사람을 희롱하다니...


고등학교때... 3년간 일기를 썼었다..


주영이..상규라는 놈과..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우정을 다지기도 했었고..


어느날..상규네 집에 놀러가서..이 자식의 일기를 보았다..


훔쳐본건지..그냥 본건지 모르지만..아무튼 보게 되었다.


그때 난 깜짝 놀랐다..


중3년간...내내 같이 붙어다니면서 장난만 일삼고... 정신없이 놀던 그 놈이...

맨날 만나서 술만 처먹고.밤새고... 몽롱한 상태로...헛짓하던 그놈이..

고등학교때 따로 진학을 하는 바람에..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놈의 일기장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내용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난 일기를 둘러보아도...그날 있었던 일의 나열.... 사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단 한가지 특이할만 한 것은 내 일기장에..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기생이자 여류시인이었던

"홍랑"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그녀와 대화식으로 일기를 적어나갔다는 것 밖에.... 

"홍랑아..학교 갔다왔다..잘 있었냐?..어제는 넘 피곤해서 너를 찾지 못했다..미안하다.."

하는 식으로.....나 변태 아니야..


그런데..그 상규라는 놈의 일기는..응당 내가 예상했던 내용들이 아니라..

고민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그 놈이..

온갖 어려운 단어를 끼어맞춰가며... 인간내면세계의 깊은 사색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 자식이 드디어 미쳤구나.."

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때..난 상당히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마음을 난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이 놀탱구리 자식이..이런 어려운 단어들을 알고 있었다니..


사람은 겉만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아~~ 이 자식... 어른이 되었구나...


난..뭐지....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술만 먹고 다니고..


이제는 체력도 바닥을 쳤다..소주 몇잔에 정신을 잃는 허약한 뽁떡이가 되었다. 


아버지 말대로..절에 들어가... 도나 닦아야 하나...


다 예전의 모습인줄 알고 있었던 아이들이 점점 커가는 모습에...


나도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


인간 업그레이드... 그 인류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은 이제 시행되었다.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오마...!!!!!!


....

 


200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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