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6년 9월 추석 전...

 

박사과정때 모였던 박수회 정기 모임이 세종시에서 있었다.

 

초기처럼 다들 모이지는 않지만.. 청주, 세종, 대전에 있던 사람들과 세종에 모여...

 

늘 그렇듯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온갖 잡언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문득 얘기했다.

 

"내년에 애들 케어하기 위해 와이프 1년 휴직해요."

 

그러자 그 말에 성철이형이 반응했다.

 

"그래? .. 음... 야.. 그러면.. 그냥 한국에서 1년 쉬지말고 미국 가서 쉬는게 어때?"

 

"음... 그러게요.. 그것도 괜찮은데.. 나갈 수 있을까?"

 

"야.... 잘됐다야.. 그럼 내가 백교수님께 말해볼께."

 

백교수님은 현재 미국 보이시대학에서 정년 트랙 교수로 계신 분이고 나와도 안면이 있지만, 성철이형이랑은 지도교수와 제자 사이로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며칠 후 성철형에게 전화왔다.

 

"야.. 백교수님이 오케이 했다. 이번 추석 끝나고 한국에 컨퍼런스 때문에 오시는데.. 너도 같이 보는게 어때?"

 

"예.. 알았어요 형.. 그런데 마누라가 좀 겁내 하네... 미국 간다니까... 겁나나봐.."

 

"그래? 그럼 추석전까지 고민해보라 그래.. 이건 좋은 기회잖아.."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다르니까.. 일단 꼬셔볼께요.."

 

 

그렇게 난 추석전까지 고민해보라고 와이프에게 말을했다. 처음에는 질색을 하던 와이프였다.

 

그리고 추석전에 울진집에 가기전에 포천 처가에 들렀다.

 

 

추석전 포도 수확 마무리를 돕고 있는데... 처 고모분들이 오셔서 나보고는 그런다.

 

"어이.. 축하해.. 이번에 미국 간다며?"

 

"에?"

 

"야.. 능력좋아.. 우리 사위.. 애들 데리고 영어 교육 시키러 미국간다네.."

 

 

......

 

아하하하하..

 

......

 

낯선 환경이 겁난다느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느니... 온갖 불만을 내놓던 와이프가.. 처가에는 이미 미국 가는 것으로 소문 내 놓은 모양이다..

 

옆에서 처제가 깔깔깔 웃으며 거든다..

 

"아하하하~~ 형부~~ 미국 못 가면 어디 가서 숨어 살아야 하는거 아니에요?"

 

"그러게.. 못가면... 저 멀리 전화기 버리고 가족끼리 1년간 숨어 살아야 겠다."

 

"하하하하"

 

..

 

그렇게 추석이 지났다.

 

백교수님과 만나 소주 한잔하고... 다음 날은 컨퍼런스에 참여한 하와이 대학의 교수들과 속초로 회를 먹으러 갔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나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작은 눈만 껌벅대며 자리를 메꾸고 있었고...

 

백교수님과 성철이형은 신나게 대화를 하고 있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새...

 

내가 개발하고 있던 원격 프리젠테이션 솔루션 얘기가 오갔고.. 어느새 난 하와이 대학에서 시연회를 약속잡게 되었다..

 

난 한마디도 안했는데... ㅎㅎㅎ

 

 

그렇게 9월 한달내에...

 

미국 갈까? 가자.. 오케이... 고고고고~ 하는 사이에 미국 가는 것이 확정되었고, 미국의 보이시대학에서는 나를 비지팅 스칼라로 초청하게 되었다.

 

 

 

12월 7일...

 

미국 보이시로 사전 답사를 하는 길에 하와이 대학에 들러서 제품 시연회를 했다.

 

좋은 반응을 얻었고, 기분 좋게 미국 본토인 보이시에 들어갔다.

 

미국이란 것을 처음 경험해보는 나를 위해.. 성철이형은 일부러 시간내어 미국 여행길에 같이 동행했다.

 

그리고 본인이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니가 가서 주문해라라고.. 음식점 주문대로 들이밀기도 했다.

 

그렇게 3주간의 미국 서부 종단 여행을 하면서 미국에 대해서 보고 느끼고 적응한 나는 1월 2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돈 수천은 깨먹고 나서... (물론 미리 사놓은 차값이 포함되어 있지만...)

 

 

..

 

와이프가...

 

"야.. 돈 쓰고 돌아다니니까 좋냐?"

 

 라고 핀잔 주는 것에...

 

"다... 니들 데리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사전 답사한거라니까..."

 

라고 대답했다가..

 

똥싸네~~ 라는 욕만 먹었다.

 

그래도 크게 뭐라 안하는 것을 보니.. 아직 미국에 대한 부담감은 있고, 사전 답사의 개념을 이해하나보다.. ㅋㅋㅋㅋㅋ

 

...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

 

영어가 안되는 내가 J1 비자로 초청받았다 해도.... 마지막 관문은 미국 대사관 인터뷰였다.

 

20년간 안했던 영어를 3주간 생활영어 몇번 떠들어봤다고 미국인하고 대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귀가 막혔으니 입이 막힌건 두말 할 것도 없고...

 

..

 

만약 영어가 안된다는 이유로 비자가 거부된다면...... 평생 가도 극복 못할 쪽팔린 역사가 될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1월 11일 인터뷰 날짜를 예약하고.. 와이프와 같이 아침 8시 30분까지 광화문으로 갔다.

 

그리고 대사관 문앞에서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는데..... 직원이 묻는다..

 

"여권도 주세요..."

 

 

엉?? 여권???

 

...

 

그러게.. 여권이 어딨지?

 

..

 

 

아아아아아.......

 

전날까지 일주일 넘게 각종 서류들을 준비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여권을 안 챙겨 온 것이다.

 

나이 많은 직원이 웃으면서..

 

"아니 이 사람아.. 전쟁터에 총을 안가져 오면 어떠하나~~"

 

..

 

그러게요..... 이런 멍청한 짓을...  옆에서 멍하게 서 있는 와이프 얼굴 볼 낯이 없다..

 

택시를 타고 집까지 왕복하면... 11시까지 올수 있을까?

 

이제 출근 길인데...

 

....

 

종로와 강남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젠장...

 

그래도 모르니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급행을 외쳤고, 택시 기사분도 최선을 다했으나.. 집에 오니 이미 돌아가기엔 늦은 상황..

 

마침.. 전화로 문의를 하니.. 비자 인터뷰는 3번까지 연기가 가능하다나 뭐라나...

 

다행이다 싶었다..

 

 

가족 4명이 비자 받을려고 준비하는 돈만 100만원이 넘는다.

 

J1인 나는 세비스 피를 180달러 내고...

 

각 명당 비자 인터뷰 비용 160달러씩 낸다.

 

비자가 통과 되건 안되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820 달러...  1200원 환율로 984,000원돈이다.

 

비자가 나가리 되면.... 그냥 그 돈 날리는 거다...

 

......

 

다행히 3번까지는 무료 연장이라서...

 

집에와서 인터넷으로 연장을 하려하니.. 오늘 못 온 사람들은 불참으로 인정되고 나서 저녁부터 다시 예약 가능하단다..

 

그렇게 1월13일로 다시 인터뷰 예약을 했다.

 

......

 

 

드디어 당일날..

 

마찬가지로 와이프와 아침일찍 대사관에 가서 이것저것 서류를 검토받고 대기했다.

 

......

 

뭔가 .... 시험 받는 분위기...

 

죄짓는 것도 아닌데... 그깟 미국이 뭐라고.. 거기 가려고 이렇게 사람들이 다들 긴장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물론.. 그 중에서 오금이 저리도록 가장 긴장했던 것은 두말 없이 나였고 말이다.

 

앞서 인터뷰 하는 사람들을 보니, 뭐가 다들 저리 영어를 잘하는지....

 

그리고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데.. 왜 거절당하는지...

 

이유를 모르니... 무릎과 무릎사이는 더더욱 가까워 지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안내하는 알바생이 저 끝쪽으로 가란다..

 

끝으로 향하는데.. 두군데가 비어 있었다....

 

한군데는 남자... 한군데는 사람은 못 봤지만.. 꽤 깐깐하게 굴었던 창구...

 

남자한테 가리라~라고 직진하다가 얼핏 옆을 봤는데....  정말 제니퍼 로페즈 같이 생긴 남미 계열의 아주 핫한 영사가 그 창구에 있는 것이 아닌가..

 

...

 

난 나도 모르게 직진하던 발걸음을 돌려 군인과도 같이 절도있게 우향우를 해버렸다...

 

"하이~"

 

나의 영어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영사는 나에게 몇마디 묻지도 않았다..

 

그냥.. 몇년 가냐고 물었고.... 1년 간다는 대답만...

 

그러고 나서는 영사 혼자서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면서 서류만 홇어보다가 한마디 질문했다.

 

그 말을 이해못해서...

 

"아임 쏘리~" 하는 순간..

 

영사는 뒤에서 대기하던 통역가를 불렀다.

 

이후부터는 난 영사랑 눈 마주치면서 통역가와만 얘기했다.

 

물었던 것은 단순했다.

 

"연구년으로 가는거냐?"

 

이거였고.. 연구년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소했던 나는 못알아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말 한마디 못 들었다고 바로 통역가를 불러주는 아름다운 영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영어 못함은 별 문제가 없었다.

 

미국 대학에 연구하러 간다는데.. 굳이 막을 이유도 없을 뿐이었던 것 같다..

 

괜히 백교수님이..

 

"미국에 연구하러 온다는 사람이 영어 못하면 그것도 문제 되어서 비자 거절되는 경우가 있어요."

 

라는 말에 잔뜩 쫄아 있었던 것 같다.

 

...

 

정말.... 핫하게 생긴 그 영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여자는 여자에게 점수가 짜다고 했던가....  하지만 와이프도 그 영사가 굉장히 미인이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거 보니.. 정말 이쁘긴 이뻤던 것 같다.

 

...

 

사실... 인터뷰 중.. 그 영사에게.. 정말 이쁘다는 말 한마디 건네고 싶었는데...

 

영사 추행에 성차별에 걸려 미국 입국 영구 정지 먹을까봐 쫄아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 ㅋㅋㅋㅋㅋ

 

...

 

 

 

그렇게 비자는 통과 되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

 

동대표를 하던 아파트에서도 사퇴 의사를 보내고...

 

그간 친했던 많은 분들과 인사를 하느라..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짐을 모두 빼서 예전 살던 집에 어느정도 보관하고....  이민 가방에 살림 살이 바리바리 싸서 미국으로 가야하니....

 

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인천공항에 가는 길은 장인장모님과 나의 친동생, 그리고 짐을 공항까지 실어주기로 한 친구들 둘이 마중나왔다.

 

..

 

둘째 슬찬이를 어릴때부터 키워왔던 장인장모님은 눈에 눈물이 글썽하였고, 개념없이 그저 좋아 날뛰는 아이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인사만 해대며 깔깔댄다.

 

사람 4명. 이민가방 8개. 기내가방 3개.

 

물론 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 와이프는 여자라 제외!

 

..

 

미치도록 중노동이다...

 

인천공항에서 짐 싣는 건 그나마 수월했는데.. 시애틀에서 그 짐을 다시 받아서 보이시행으로 집어넣을때는 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판에... 아이들은 매달리고 화장실 간다고 떼쓰고....

 

미치도록 .. 미치도록... 짜증이 솟았다.

 

 

그렇게 보이시에 도착하여 미리 잡아놓은 호텔에서 3박을 하며, 집 구하러 뛰어다니고... 애들 학교 등록시키고..... 부랴부랴 정신없는데..

 

그 놈의 마누라는 시차인지 뭔지... 낮에 잠만 자고...  미치도록 짜증이 솟는다..

 

짜증내지 말자 내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짜증이 샘 솟는다...

 

......

 

 

 

그래도.....  현재는 집도 구하고 큰 짐도 모두 들여놓았으니.....  모든게 해피하다....

 

이제 애들 낮에 자고 밤에 깨서 돌아다니는데.. 이것만 정상적으로 잡아주면...

 

미국 정착....   미국 생활.... 시작인거지...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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